장마는 끝이 나고 코로나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딱히 치료제가 개발되어 가는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은 코로나에 대해 점점 더 무관심해지는 느낌이다.
며칠 전 광화문 집회와 더불어 사랑교회 때문에 코로나는 더 심해졌다.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없을수록 내 인생을 코로나 때문이라고 자위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취업에 대한 고민도 코로나 탓, 살이 찌는 것도 코로나 탓, 뭐든 코로나 탓이라고 자위하며 산다.
이렇게 코로나를 비난할 때마다 공산주의의 딸은 코로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지 않았냐며 위로한다.
확실히 이 점에 대해선 코로나의 덕을 본 게 맞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지도 잘 모르겠고 공산주의의 딸도 아마 공산주의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차이는 남북의 문제를 넘어서 내 연애사의 문제가 될뻔했다.
여자 친구를 만난 지도 어느새 4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엔 서로 걱정을 많이 했다.
문화 차이가 심하면 어떡하지? 오랫동안 떨어져서 문자랑 전화만 했는데 현실에서는 다르면 어떡하지?
게다가 여자 친구는 과거에 장거리 연애 때문에 이별을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의 딸의 과거에 자본주의의 오점으로 남고 싶지 않았기에 더 노력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연애라는 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잘 맞는 사람은 어차피 잘 맞는다.
난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아버지 같은 한국 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수적인 한국 남자의 클리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것 만났던 여자들에겐 이러한 클리셰들이 많이 통했던 것 같다.
입버릇처럼 '안돼' '하지 마' '싫어'를 달고 살았고 그로 인해 끊임없는 다툼을 했다.
공산주의의 딸은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싫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한 번은 정말 궁금해서 '넌 내가 싫다고 하는데 왜 계속하는 거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말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좋으니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었고 내가 바라던 대답이었다.
나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게 확실한 사람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 같다.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답정너가 아닌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따라만 오면 돼!'의 답정너인 공산주의의 딸이 난 좋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중국여자를 만난다. (0) | 2020.06.28 |
---|---|
필승! 김하사님! (0) | 2019.11.30 |
신발 그리고 아버지 feat. 나이키 & 아디다스 (0) | 2019.11.26 |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 (0) | 2019.11.22 |
댓글